기반시설과 공공재의 특성 및 국가 운영에서의 필요성

아파트 단지 전체가 정전되던 날 밤, 노트북 배터리가 바닥나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전력망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실감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고맙다고 느끼지 못했던 기반시설이, 고작 두 시간 끊겼다는 이유만으로 집 안의 모든 기능을 완전히 멈춰버렸습니다. 그날 이후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세금과 공공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결국 기반시설과 공공재는 단순히 편리함을 주는 걸 넘어, 한 사회의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국가가 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적자를 보면서도 버스 노선을 유지하고 공원을 인프라를 돌리는지, 그 현실적인 이유와 가치를 이론 대신 일상의 시선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기반시설과 공공재의 특성

 

정전 두 시간이 가르쳐준 전력망의 무게

몇 달 전 재택근무 중이던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창밖이 캄캄해지더니 모니터도, 냉장고도, 현관 비밀번호 패드까지 전부 꺼졌습니다. 스마트폰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에 앉아있는데, 냉장고 안 음식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고 물 공급마저 끊겼습니다. 고작 두 시간이었는데도 일상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전력망, 도로, 통신망 같은 시설을 기반시설(Infrastructur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기반시설이란 사회와 경제 전체가 작동하기 위한 물리적 뼈대를 의미합니다. 개인이 하나씩 비용을 치르고 이용하는 일반 재화와 달리, 전력망은 초기 구축에만 수조 원이 들어가고 한 번 깔리면 사실상 모든 사람이 동시에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이때 공공재(Public Goods)의 핵심 개념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비배제성이란 특정 사람을 소비에서 배제하기 어려운 성질이고, 비경합성이란 내가 소비해도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지 않는 성질입니다. 가로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내가 가로등 아래 서 있다고 해서 옆 사람이 어두워지지 않고, 비용을 안 낸 사람이라도 빛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장 실패(Market Failure)가 발생합니다. 시장 실패란 민간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어떤 민간 기업도 자발적으로 가로등을 세우거나 전력망을 깔지 않습니다. 저도 그날 밤 전에는 "전기요금 내면 되는 거 아닌가"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전력망 자체를 유지하는 거대한 공공 투자가 뒤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전력공사의 전력 공급 손실 통계를 보면, 정전 한 건당 산업·가정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단순 전기요금의 수십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력망이라는 기반시설이 흔들리면 그 충격이 사회 전체로 번진다는 것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 비배제성: 비용 미납자도 소비를 막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음
  • 비경합성: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몫을 줄이지 않아 가격 책정 자체가 어려움
  • 시장 실패: 결국 국가가 개입해 세금으로 직접 생산·유지해야 공급 가능

 

요약: 전력망 같은 기반시설은 비배제성·비경합성으로 인해 시장이 자발적으로 공급할 수 없고, 정전 두 시간이 그 사실을 몸으로 가르쳐 줬습니다.

 

적자 버스 노선과 민영화의 위험한 계산법

지난달 업무 출장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지방 소도시 외곽 마을을 찾았습니다. 버스가 하루에 딱 세 번 들어오는 정류장이었는데, 저를 포함해 승객이 세 명이 전부였습니다. 운전기사님이 허허 웃으시며 "정부 보조금 없으면 이 노선은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한참 맴돌았습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그 버스는 경영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완벽한 적자 사업입니다.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 노선을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유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수익성만 따져 그 노선이 폐지된다면, 그 마을 어르신들은 병원 한 번 가려고 택시비를 감당해야 하거나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보편적 서비스 의무(USO, Universal Service Obligation)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USO란 수익성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할 의무를 뜻합니다. 시골 버스 노선 유지가 바로 이 원칙의 현실적인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인프라 민영화가 효율성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민간 기업의 본질은 분기별 수익 극대화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서비스가 개선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유지 보수 투자가 줄고 이용 요금이 올라가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가 그 전형입니다. 영국은 1990년대 국영철도를 민영화한 이후 요금 폭등과 안전사고가 이어졌고, 결국 2023년 사실상 재국유화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인프라는 한 번 무너지거나 민간에 팔리면 되돌리는 데 구축 비용의 수십 배가 들어갑니다. 당장 눈앞의 적자 수치에 현혹되어 국민 모두의 이동권과 생존권을 담보로 효율성이라는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날 시골 정류장에서 굳어진 제 생각입니다.

흔히 무임승차 문제를 두고 "얌체족"이라는 도덕적 비난을 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핵심을 벗어난 접근이라고 봅니다. 비배제성이라는 구조 아래서 사람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선택합니다. 이건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시장 경제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강제력으로 세금을 걷어 공공재를 직접 공급하는 것은 냉혹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이 풀 수 없는 딜레마를 해소하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정전으로 캄캄해진 방 안에서, 그리고 하루 세 번 버스가 전부인 시골 정류장에서, 저는 공공재와 기반시설이 단순한 경제학 용어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전력망이 없으면 냉장고가 멈추고, 버스가 없으면 병원 가는 길이 막힙니다. 국가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성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금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없는 건 아닙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걸 보면 솔직히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수장이 돌아가고, 발전소가 켜져 있고, 새벽에도 순찰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앞으로 기반시설 민영화 논의나 공공 예산 삭감 뉴스를 접할 때,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한 번쯤 같이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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